바다의 노동자 — 7 karakter
데뤼셰트
생피에르포르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삼촌 르티에리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고생 한번 모르고 공주처럼 자랐다. 매우 아름답고 밝으며 순진하다. 무심코 눈 위에 길리아트의 이름을 쓴 행동이 길리아트의 집착을 불러일으켰다. '라 뒤랑드'호 침몰로 충격받은 집안의 슬픈 천사가 된다. 하룻밤 사이에 종교적인 길과 목사 에베네저에게 영적으로 이끌리며 사랑을 깨닫는다. 결말부에서 길리아트의 거대한 희생 덕분에 에베네저와 결혼하여 기선을 타고 행복을 향해 섬을 떠난다.
에베네저 코드레이
최근 건지섬에 부임한 젊고 잘생겼으며 진지하고 존경받는 지적인 성공회 교구 목사이다. 세속의 악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의 신앙심 깊은 마음은 데뤼셰트를 만나면서 크게 흔들린다. 세속적 즐거움에 무관심하던 그는 삼촌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엄청난 부를 상속받게 된다. 길리아트의 거대한 희생의 간접적인 수혜자가 되어, 데뤼셰트와 함께 기선 '카슈미르'호를 타고 섬을 떠나 연인과 헤어지게 된다.
길리아트
자연 속에서 자라나 늘 아웃사이더로 지내온 젊은 선원으로, 생상송 사람들에게는 기이하거나 마법사 혹은 의심스러운 인물로 여겨졌다. 목공, 대장일, 항해술 등을 독학하며 독립적이고 고립된 삶을 구축했다. 데뤼셰트를 향한 남몰래 간직한 숭고한 사랑 때문에, 난파된 라 뒤랑드호의 엔진을 회수하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과업을 떠맡는다. 두 달 동안 두브르 암초에서 굶주림, 폭풍우, 추위, 거대 문어와 맞서 싸우며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돌아왔을 때 자신의 보상이어야 할 소녀가 다른 사람(에베네저)과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위대한 영웅주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침묵 속의 물러남을 선택한다. 젊은 커플을 떠나보낸 뒤, 바닷가 구덩이 속에서 바닷물이 자신을 삼키게 함으로써 비극적으로 자신의 서사적인 삶을 마감한다.
랑텐
과거 르티에리의 저축액과 자본을 갈취하고 사라진 거대하고 영리하며 위험한 사기꾼이다. 비슷한 부류인 클뤼뱅에게 쫓겨, 10년 동안 고리대금으로 챙겨온 7만 5천 프랑(르티에리의 돈)을 클뤼뱅의 총구 앞에서 협박과 공갈로 빼앗기게 된다. 밀수업자들과 결탁해 채널 해안을 떠나 대양 건너편으로 도망친다.
클뤼뱅 씨
건지섬 전역에서 정직과 직업 윤리의 표본으로 인정받는 지적이고 위선적인 '뒤랑드'호의 선장이다. 수년간 정성스럽게 짠 거짓 정직이라는 가면 뒤에서 거대한 절도 계획을 꾸민다. 랑텐에게서 총기로 돈을 갈취하고, 사고를 가장해 '뒤랑드'호를 절벽으로 돌진시키며,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마지막 순간에 거대한 승리를 거둘 것이라 믿는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가 배와 함께 명예롭게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는 랑텐의 돈과 신분을 가지고 도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짙은 안개 속에서 바위를 잘못 타격한 실수와 문어에게서 탈출하지 못한 것이 그의 전설적인 파멸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르티에리 씨
건지섬 출신의 전직 선원이자 목수이며, 새로운 지평을 찾아 나선 선주이다. 자신의 천재성과 용기로 건조한 증기선 '라 뒤랑드'호는 채널 제도 전역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기계였지만, 그에게 막대한 부와 존경을 안겨주었다. 결혼하는 대신 친딸처럼 사랑했던 고아 조카 데뤼셰트를 애지중지 키웠다. 고집이 세지만 매우 선량한 인물로, 성직자를 싫어하고 진보를 믿는다. 클뤼뱅이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을 때 정신적 붕괴를 겪으나, 엔진을 구조해 오자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다. 길리아트와 한 약속을 지키려 고집하지만, 딸의 사랑을 알게 된 후에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덕망을 보여준다.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는 1802년 2월 26일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폴 위고는 나폴레옹 군대의 장교였고, 어머니 소피 트레뷔셰는 확고한 왕당파였다. 한 지붕 아래 상반된 두 세계가 있었던 셈이다.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가족은 끊임없이 옮겨 다녔고, 유년기는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에까지 이어졌다. 결국 어머니와 함께 파리에 정착했고, 책 읽기가 일찍부터 그의 피난처가 되었다. 스무 살에 첫 시집을 냈고 같은 해에 어린 시절 친구 아델 푸셰와 결혼했다. 1827년 『크롬웰』에 붙인 서문은 고전극의 규칙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었고, 젊은 낭만주의자들의 선언으로 읽혔다. 1830년 『에르나니』 초연은 객석의 난투로 번졌는데, ‘에르나니 전투’라 불리는 그날 밤이 그를 새로운 세대의 맨 앞에 세웠다. 이듬해에는 『파리의 노트르담』이 나왔다. 184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지만, 진짜 균열은 1843년에 왔다. 딸 레오폴딘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센강에서 배가 뒤집히면서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위고는 그 죽음을 신문에서 알았고, 이후 여러 해 동안 시 속에서 딸의 자취를 좇았다.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맞서다 프랑스를 떠나야 했고, 브뤼셀을 거쳐 저지섬과 건지섬에서 긴 망명 생활이 시작되었다. 『레 미제라블』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썼고, 『바다의 노동자들』은 그 섬에 바쳤다. 그의 문장은 호흡이 길고 목소리가 높았다. 거리의 말을 시로, 역사와 가난을 소설로 끌어들였고 평생 사형제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 1870년 프랑스로 돌아왔고 1876년 상원의원에 선출되었다. 1885년 5월 22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 뒤 팡테옹에 묻혔다.